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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안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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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안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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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지역정보넷 평안남도 개요
한반도 북서지방의 남부에 있는 도. 남부는 수도 평양시와 남포시ㆍ황해북도, 북부는 평안북도와 자강도, 동부는 함경남도ㆍ강원도와 접해 있으며 서부는 서해에 면해 있다. 평안남도는 지리적으로 동경(E) 127°11′(대동군 흑수리)~125°08′(온천군 운하리), 북위(N) 38°44′(온천군 증악노동자구)~40°21′(대흥군 낭림리) 사이에 놓여 있다.

도의 북동~남서(대흥군 경수노동자구~온천군 증악노동자구) 간의 길이는 236km이고, 서북~동남(개천시 도화리~회창군 신성리) 간의 너비는 89km이며, 면적은 11,890.6㎢로서 국토면적의 5% 이상을 차지한다. 현재 행정구역은 5시 15군 1구 1지구로 구성되어 있으며 도 소재지는 평성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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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남도 행정구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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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지역정보넷 평안남도 지명유래
조선 말기인 1896년에 전국을 13도로 나눌 때 평안도 안에서 청천강(淸川江)을 기준으로 하여 그 이남지역이라 하여 평안남도라고 불렀다. 평안도란 말은 조선 초인 1413년 전국을 8도로 나누면서 당시 서북면의 지역을 해당 도 안에서 가장 큰 두 개 고을의 첫 자를 따서 명명하는 관례에 따라 평양의 ‘평(平)’자와 안주의 ‘안(安)’자를 따서 부른 이름이다.
 
북한지역정보넷 평안남도 역사
평안남도 지역은 원시사회부터 사람들이 살아왔다. 평안남도 일대의 주민들이 국가관리체계에서 생활하게 된 것은 기원전 3천년기 초에 세워진 고조선 영역에 속하였을 때부터이다. 기원전 277년부터 기원 668년까지는 고구려에 소속되어 고구려의 중심지가 되었다. 기원 668년(보장왕 27년)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에 의해 고구려왕조가 패망한 후 일정한 기간 이 일대는 발해와 통일신라의 지배 하에 있었다. 고려왕조가 건립된 이후 고려의 영역에 편입되었다. 기원 983년에 전국을 12목(牧)으로 나눌 때 안주목(安州牧)에 속하였으며 기원 995년 전국을 10개 도로 나눌 때 평안남도 지역은 패서도(浿西道)로 불렀다.

1036년부터 1106년 사이에 5도양계제도가 나올 때 패서도는 북계도(北界道)로 되어 서경평양부(西京平壤府), 강계부(江界府), 이성부(泥城府), 안북대도호부(安北大都護府), 구주(龜州), 선주(宣州), 인주(麟州), 의주(義州), 용주(龍州), 정주(靜州), 삭주(朔州), 창주(昌州), 운주(雲州), 연주(延州), 가주(嘉州), 박주(博州), 곽주(郭州), 철주(鐵州), 영주(靈州), 맹주(孟州), 덕주(德州), 무주(撫州), 순주(順州), 위주(渭州), 태주(泰州), 성주(成州), 은주(殷州), 숙주(肅州), 자주(慈州), 수주(隨州), 강동현(江東縣), 강서현(江西縣), 중화현(中和縣), 순화현(順和縣), 통해현(通海縣), 영청현(永淸縣), 함종현(咸從縣), 용강현(龍岡縣), 삼화현(三和縣), 삼등현(三登縣), 영덕진(寧德鎭), 위원진(威遠鎭), 정융진(定戎鎭), 영삭진(寧朔鎭), 안의진(安義鎭), 청새진(淸塞鎭), 평로진(平虜鎭), 조양진(朝陽鎭), 양암진(陽巖鎭), 수덕진(樹德鎭), 안융진(安戎鎭), 영원진(寧遠鎭) 등 3개 부(府), 1개 대도호부(大都護府), 26개 군(郡), 10개 현(縣), 12개 진(鎭)을 관할하였다. 1102년부터 서북면(西北面)으로 불렀다. 그 후 서해도(西海道)의 황주목(黃州牧), 안악군(安岳郡), 철화현(鐵和縣), 장명진(長命鎭)이 편입되었고 1388년에 황주목, 안악군, 철화현, 장명진이 다시 서해도에 귀속되었다.

1413년에 전국을 8도로 나눌 때 평안도(平安道)라고 하였으며 그 이름은 오랫동안 존속되었다. 당시 청천강 이남의 평안도지역은 평양부(平壤府)와 안주목에 속하였다.

1531년에 평안도는 평양부, 영변대도호부(寧邊大都護府), 성천도호부(成川都護府), 숙천도호부(肅川都護府), 창성도호부(昌城都護府), 삭주도호부(朔州都護府), 구성도호부(龜城都護府), 강계도호부(江界都護府), 안주목, 정주목(定州牧), 의주목(義州牧), 중화군(中和郡), 가산군(嘉山郡), 철산군(鐵山郡), 용천군(龍川郡), 선천군(宣川郡), 곽산군(郭山郡), 운산군(雲山郡), 희천군(熙川郡), 전천군(前川郡), 태천군(泰川郡), 덕천군(德川郡), 개천군(价川郡), 자산군(慈山郡), 순천군(順川郡), 상원군(祥原郡), 위원군(渭原郡), 이산군(麟山郡), 벽동군(碧潼郡), 영원군(寧遠郡), 용강현, 삼화현, 함종현, 증산현(甑山縣), 순안현, 강서현, 영유현(永柔縣), 삼등현, 양덕현(陽德縣), 맹산현(孟山縣), 강동현, 은산현(殷山縣) 등 1개 부, 1개 대도호부, 6개 도호부, 3개 목, 19개 군, 12개 현을 개편 관할하였다. 1869년에 후창군(厚昌郡)을 신설하였고, 1895년에 전국의 행정구역을 23부제로 개편할 때 평안도지역은 평양부, 의주부(義州府), 강계부에 분리되어 있었다.

당시 평양부는 평양, 안주, 숙천, 순안, 용강, 영유, 증산, 함종, 삼화, 자산, 강서, 덕천, 영원, 희천, 맹산, 영변, 운산, 순천, 개천, 은산, 양덕, 삼등, 강서, 상원, 중화, 황주, 성천 등지를, 의주부는 의주, 창성, 벽동, 삭주, 용천, 철산, 선천, 곽산, 정주, 가산, 박천, 태천, 구성 등지를, 강계부는 강계, 후창, 자성, 초산(楚山), 위원, 장진(長津) 등지를 관할하였다. 1896년에 전국23부제를 13도제로 개편할 때 평안도가 남북으로 갈라지면서 이 지역은 평안남도(平安南道)로 되어 평양부, 중화군, 상원군, 삼등군(三登郡), 강동군(江東郡), 강서군(江西郡), 용강군(龍岡郡), 함종군(咸從郡), 증산군(甑山郡), 영유군(永柔郡), 순안군(順安郡), 숙천군(肅川郡), 안주군(安州郡), 개천군, 자산군, 순천군, 은산군(殷山郡), 성천군, 양덕군(陽德郡), 맹산군(孟山郡), 덕천군, 영원군 등 1개 부, 21개 군을 관할하였다. 1907년에 은산군이 순천군에 편입되면서 폐지되었다. 광복 전 일제는 조선시대의 지방행정체계와 행정구역을 거의 그대로 보존하면서 식민지통치에 유리한 중앙집권적인 행정체계를 건립하였다.

1912년 당시 평안남도의 행정구역은 2개의 부(평양부·진남포부, 鎭南浦府)와 17개의 군(중화, 상원, 양덕, 성천, 강동, 강서, 용강, 증산, 영유, 순안, 숙천, 안주, 순천, 개천, 덕천, 영원, 맹산), 304개의 면, 2,349개의 리로 되어 있었다. 이때 평안남도 소재지는 평양부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 시에 영유군·숙천군·순안군·증산군·평양부 일부를 병합하여 평원군(平原郡)으로, 평양부 일부를 분리하여 대동군(大同郡)으로 각각 개편하여 평양부, 진남포부, 대동군, 강서군, 용강군, 중화군, 강동군, 성천군, 양덕군, 평원군, 안주군, 개천군, 순천군, 덕천군, 맹산군, 영원군 등 2개 부, 14개 군을 개편 관할하였다.

광복 후 1946년에 평양부가 평양특별시(平壤特別市)로 승격되어 도에서 분리되었고, 1950년에 진남포부가 남포시(南浦市)로 개편되었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에 따라 13개 군과 6개의 노동자구(회창군 신흥노동자구, 은산군 재동노동자구, 강서군 기양노동자구, 강선노동자구, 강동군 흑령노동자구, 개천군 용담노동자구)를 신설하였다. 그리하여 평안남도는 남포시, 대동군, 강서군, 용강군, 증산군, 온천군(溫泉郡), 순안군, 평원군, 숙천군, 문덕군(文德郡), 안주군, 개천군, 강남군(江南郡), 중화군, 상원군, 강동군, 승호군(勝湖郡), 성천군, 회창군(檜倉郡), 신양군(新陽郡), 양덕군, 순천군, 은산군, 북창군(北倉郡), 맹산군, 덕천군, 영원군, 대흥군(大興郡) 등 1개 시, 27개 군, 679개의 리, 읍, 노동자구로 구성되었다. 1954년에 대흥군이 함경남도(咸鏡南道)에 이관되면서 일부 지역이 영원군에 편입되었다.

1959년에 승호군이 평양시에 넘어갔고, 대동군 일부가 평양시 서성구역, 대성구역, 만경대구역에 각각 편입되었다. 1963년에 강남군, 중화군, 상원군이 평양시에 편입되어 평안남도는 1개 시, 22개 군을 관할하였다. 1965년에 순천군의 사인리(舍人里)·봉학리(鳳鶴里)·덕산리(㯖山里)·순안군의 상차리(上次里)와 평양시 용성구역(龍城區域)의 하리(下里) 일부·하차동(下次洞) 일부를 병합하여 시보다 작고 노동자구보다 큰 평성구(平城區)를 신설하고 평안남도의 도급 당 및 행정기관들을 평양시에서 평성구로 이전시키기 시작하였다.

1966년 3월 대동군의 일부가 평양시에 편입되었고 1969년에 평성구가 평성시(平城市)로 승격되면서 평안남도 소재지로 되었다. 1972년에 대흥군이 다시 귀속되고 순안군이 평양시에 이관되면서 일부 지역을 분리하여 평성시, 평원군, 대동군에 각각 편입하였다. 1974년에 은산군이 성천군과 순천군에 분리 편입되면서 폐지되었고, 1978년 3월 강서군과 용강군 일부를 병합하여 대안시(大安市)를 신설하였다. 1979년에 남포시, 용강군, 대안시가 평안남도에서 분리되어 남포직할시(南浦直轄市)로 개편되었다. 1980년에 문덕군 일부를 분리하여 청남구(淸南區)를 신설하였고 평안북도 박천군의 일부가 안주군에 편입되었다.

1983년에 강동군이 평양시에 이관되었으며, 순천군이 순천시(順川市)로 승격되었다. 1986년에 덕천군이 덕천시(德川市)로, 1987년에 안주군이 안주시(安州市)로 승격되었다. 1987년 1월 대동군의 대보산리(大寶山里)가 남포시 강서구역(江西區域)에 편입되었고, 1990년에 개천군이 개천시(价川市)로 승격되었으며, 1992년에 순천시 일부와 북창군 1개리·성천군 4개 리를 병합하여 은산군을 복귀하였다. 1995년 5월 평성시 덕산동(㯖山洞)·배산동(裴山洞)과 지경동(地境洞) 일부·송령동(松嶺洞) 일부를 병합하여 은정구역(恩情區域)을 신설하고 평양시에 편입시켰다. 같은 해 6월에 평원군 석암리(石岩里) 일부가 평양시에 편입되었고, 11월에 성천군 백원노동자구(百源勞動者區) 일부가 평양시에 편입되었으며 백원노동자구는 백원리로 강등되었다. 그리고 북창군의 석산리(石山里)와 원평리(院坪里) 일부·용산리(龍山里)의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군급기능을 수행하는 득장지구(得將地區)를 신설하였으며 평안남도는 5개 시, 4개 구, 1개 지구, 15개 군을 관할하게 되었다.

1997년에 안주시의 용복리(龍伏里)·용담리(龍潭里)·용전리(龍田里)·중흥리(中興里)·입석리(立石里)·반룡리(盤龍里)·구룡리(九龍里)와 순천시 신흥리(新興里)를 병합하여 운곡지구(雲谷地區)를 신설하였고, 청남구가 문덕군에 편입되면서 폐지되었다. 1999년에 청남구가 문덕군 일부를 분리하여 다시 복귀되었다. 2000년 1월 득장지구의 명학(鳴鶴)·보업(甫業)·갈골·득장노동자구(得將勞動者區)를 통합하여 북창군 득장노동자구로 되면서 득장지구가 폐지되었다.

2003년 현재 행정구역은 5시(평성시, 개천시, 덕천시, 순천시, 안주시, 15군(영원군, 대동군, 대흥군, 맹산군, 문덕군, 북창군, 성천군, 숙천군, 신양군, 양덕군, 온천군, 은산군, 증산군, 평원군, 회창군), 1구(청남구), 1지구(운곡지구)으로 구성되어 있다. 평안남도 소재지는 평성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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