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SS서비스 사이트맵 열린참여관 북한지역정보넷소개관 조선향토대백과
북한지역정보넷
북한지역정보넷 행정구역정보관 자연지리정보관 인문지리정보관 유물유적관 인물정보관 민속문화관 멀티미디어관
북한지역정보넷
북한지역정보넷 북한지역정보넷
북한지역정보넷 북한지역정보넷
인기검색어
내가 찾은 단어
북한지역정보넷
민속문화관
북한지역정보넷 북한지역정보넷
 
 민속문화관 > 옷차림풍습 > 예복차림
 
북한지역정보넷 북한지역정보넷
UCI :
스크랩주소 :
내부조회수 : / 외부조회수 :
스크랩수 :
어린이예복
첫돌옷
3.7날옷과 백날옷
관례옷
남자 관례옷
녀자 계례옷
혼례옷
남자 혼례옷
녀자 혼례옷
환갑옷
상제례옷
수의
상례옷
제례옷
명절옷
설명절옷
단오명절옷
북한지역정보넷 남자혼례옷
남자의 혼례옷차림은 일반적으로 해당 시기의 바지, 저고리에 겉옷과 머리쓰개, 신발 등으로 이루어졌다. 조선 말기까지 전해온 남자의 혼례옷차림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 하나는 바지, 저고리에 소창옷이나 두루마기를 입고 갓을 쓴 다음 갖신이나 짚신을 신은 비교적 소박한 차림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바지, 저고리에 소창옷이나 두루마기를 입은 다음 자기 집안의 벼슬 등급에 따른 흉배가 달린 단령(깃을 둥글게 만든 관리의 일상옷)을 걸치고 각띠를 띠며 사모(앞이 낮고 뒤가 높은 복두 모양의 사로 만든 쓰개. 뒤 양켠에 날개가 있다)를 쓰고 목화(신발)를 신은 차림 즉 사모관대차림이었다. 첫 부류의 소박한 남자 혼례옷차림은 본래 일반 백성들 속에서 생겨난 것이었고 사모관대차림은 양반관료들 속에서 생겨났다.

사모관대는 원래 관리들의 관복이었다. 우리나라에서 관리들이 사모관대차림을 하기 시작한 것은 고려 말기부터였고 관복에 흉배를 달게 된 것은 조선 전기인 15세기 초중엽(세종 때에 논의되고 단종 2년에 품계에 따른 무늬를 구체적으로 제정)부터였다. 그러므로 남자들이 혼례식 때 사모관대를 사용하게 된 것은 관리들이 관복차림으로 사모관대에 흉배까지 달게 된 이후부터였을 것이다. 조선 전기까지만 하여도 흉배가 달린 관복은 일정한 급의 관리들이 문무 구별과 벼슬 등급에 따라 엄격히 규제된 것만 입게 되어 있었다. 따라서 사모관대의 혼례옷은 먼저 사모관대를 할 수 있는 양반관료들 속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조선 후반기에 들어와 신분제도에 의한 옷제도가 점차 문란해지면서 사모관대를 혼례옷으로 이용하는 현상이 늘어나게 되었으며 점차 일반 백성들 속에까지 퍼지게 되었다. 민간에서 사모관대를 혼례옷으로 이용하게 된 것은 당시의 사회적 풍조와 관련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남자들이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을 얻어 사모관대차림을 하는 것을 ‘일생의 소원’으로, ‘입신양명’의 길이 열리는 것으로 여겼다. 그리하여 당시 남자들은 사모관대차림을 하는 것을 최대의 염원으로 생각하였으며 그것이 결국 일생에 한 번밖에 없는 혼례 때의 예복으로 되었던 것이다.

물론 일반 백성들이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에 등용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으므로 신랑, 신부의 부모들은 자기 자식들에게 혼례 때만이라도 사모관대차림을 시켜 인생의 새로운 출발에 행복이 있기를 바라 마지않았던 것이다.

19세기 후반기까지도 혼례옷으로 사모관대차림을 할 때 쓰는 모자는 사모였고 입는 단령은 검푸른색 비단으로 하였으며 흉배는 당하 문관들이 달았던 한 마리의 학과 구름 무늬를 수놓은 것이었다. 그러나 점차 높은 급의 관리들이 달던 흉배인 두 마리의 학과 구름이 형상된 당상 문관들의 흉배를 달게 되었다.

신랑이 혼례옷에 띠는 띠를 대라고 하였는데 이것도 원래는 벼슬 등급에 따른 관복의 띠였다. 조선 말기에 신랑은 1품관이 띠는 무소뿔로 장식한 서대를 띠었다. 신랑이 혼례 때 신는 목화(木靴)는 ‘대화’라고도 하였는데 관리들이 일상옷차림을 할 때 신던 것이었다. 이 신은 지금의 장화처럼 목이 길었으며 겉은 흔히 검은색의 두터운 비단으로 하고 안은 재색의 융(겉면에 짧고 보드라운 털이 있게 짠 면천)을 썼다. 솔기에 붉은색 선을 대기도 하였는데 밑창은 가죽으로 하는 것이 상례였다.

사모관대를 남자의 혼례옷으로 이용하게 되면서 사모의 갖춤새에는 초혼(처음 장가드는 것)과 재취(다시 장가드는 것)를 구별하는 풍습까지 생기게 되었다. 초혼의 경우에는 사모의 뒷날개를 두 개 가지런히 꽂았으나 재취의 경우에는 사모의 뒷날개의 한쪽을 떼어버렸다. 또한 일부 지방에서는 혼례 때에 신랑이 겨울철에도 모시와 베로 지은 속적삼과 속바지를 입는 풍습이 있었는데 그것은 모시나 베옷이 시원한 것처럼 장가든 다음에도 평생 속시원하게 살라는 부모들의 염원이 담긴 것이었다고 한다. 남자 혼례옷은 여름에는 베나 모시, 무명 등으로 지은 저고리, 바지, 두루마기를 입었고 겨울에는 거기에 솜을 두어 입었다. 그리고 사모관대차림을 하는 경우에만 계절에 관계없이 성글게 짠 비단으로 만든 단령을 이용하였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의 남자혼례옷차림은 비교적 단순하였으며 형태에서나 재료에서 전국적으로 거의 같았다. 이것은 지방에 따라 차이가 있었던 여자혼례옷차림에 비한 남자 혼례옷차림의 주요특징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북한지역정보넷  
사이트링크-국가지식포털 사이트링크-행정안전부 사이트링크-한국정보문화진흥원 사이트링크-평화문제연구소 사이트링크-통일부 사이트링크-통일교육협의회 사이트링크-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이트링크-통일문제연구협의회
로고-북한인문지리넷 북한지역정보넷 로고-국가지식포털
유관기관링크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북한지역정보넷 저작권정책 북한지역정보넷 개인정보보호정책 북한지역정보넷 위치 및 연락처 북한지역정보넷 관리자에게 북한지역정보넷 배너및뷰어
식풍습
옷차림풍습
    - 옷차림풍습의 역사개관
    - 일상옷차림
    - 예복차림
    - 관복차림
    - 무대옷차림
    - 옷감의 색깔 및 무늬
    - 옷짓기와 옷보관 관습
    - 옷차림의 특징과 예절
    - 옷차림의 계승발전
    - 침구관습
주택생활풍습
가족생활풍습
노동생활풍습
민속명절
민속놀이
민속음악
민속무용
구전문학
민속공예
북한지역정보넷 tip 북한지역정보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