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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속문화관 > 주택생활풍습 > 주택의 이용과 갖춤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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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방과 세간의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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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지역정보넷 홑집의 살림방과 집세간
외통유형주택에서의 살림방으로서는 큰방(아랫방, 안방), 윗방, 샛방, 맏윗방, 사랑방, 행랑방을 들 수 있다. 어느 방을 누가 이용하는가 하는 것은 그 가정의 가족구성과 구체적인 실정에 따라 다르나 일반적인 이용풍습은 비슷하였다.

큰방은 홑집에서 긴 통간으로 된 방을 말하는데 여기에는 규모가 크다는 의미도 있으나 그 이용과 집세간갖춤새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긴 통간을 칸막이를 하였을 때에는 아랫방과 윗방으로 갈라지기도 하였다. 큰방(아랫방)을 경기도이남 남부일대의 주택들에서는 안방이라고도 하였다. 안방이라는 말은 쌍채집인 경우에 앞채에 있는 방에 비하여 안쪽에 있는 방이라는 뜻의 말이다. 그것은 또한 주로 여자들이 이용한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17세기의 기록에 “부인들의 내실(안방)은 아무나 들여다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집의 안구석에 있다”고 한 것은 그것을 말하여준다.

큰방(안방)은 가장 이용률이 높은 방으로서 이 방에 가족성원들이 단란하게 모여앉아 의논도 하고 식사도 같이 하는 데 이용되었다. 그리고 가까운 친척들이나 여자손님이 온 경우에는 이 방에서 맞이하였으며 대사도 큰방에서 하였다.

큰방에는 일반적으로 늙은 세대와 어린 손자들이 거처하였다. 그런데 아들이 성장하여 결혼을 하면 큰방(긴 통간)을 반분하여 간벽을 막아서 아랫방과 윗방으로 나누고 아랫방은 늙은 부부가, 윗방은 아들 부부가 이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때에도 손자, 손녀들은 흔히 할아버지, 할머니와 같이 거처하였다.

큰방은 가정살림을 도맡아하는 주부가 거처하는 것이 일반적인 풍습이었다. 가정에서 주부의 역할을 하던 늙은 시어머니가 돌아가고 며느리가 주부권을 넘겨받게 되면 그 며느리는 큰방을 차지하였다. 또한 가정형편에 따라 시어머니가 늙고 며느리가 중년 이상이 되었을 때에는 주부권을 넘겨받고 안방을 차지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때 시어머니는 거처를 건넌방으로 옮겼다.

예로부터 가정생활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 것은 마련된 음식재료로 식생활을 조직하며 옷감을 마련하여 옷을 지어입는 일이었으며 이것을 주관하는 사람을 주부라고 하였다. 주부가 부엌과 연결된 큰방에 거처하는 것은 가정생활에서 합리적이었다.

큰방은 어느 방보다도 가정생활이 집중되는 것만큼 거기에는 가정살림에 필요한 기구와 시설들이 집중되었다. 그것은 큰방에 주부가 거처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생활용품들이 주부가 관리하기에 편리한 안방에 놓이게 되었던 것이다. 큰방에는 보통 옷을 보관하거나 손질하는 데 필요한 가구 또는 재봉도구, 화장용구를 비롯한 여러 가지 세간들이 갖추어져 있었다.

일반적으로 옷보관용가구로 갖추어진 것은 장과 농, 옷장 등이었다. 장은 그 문의 형식에 따라 반닫이, 여닫이, 드닫이 등으로 구분되었다. 반닫이는 앞면의 절반이 문짝으로 되어 있으며 여닫이는 앞면의 복판이 두짝으로 된 문을 달고 양쪽으로 열었다 닫았다 하게 만든 것이며 드닫이는 문이 장의 윗면에 있는 것이다.
농은 옷을 넣어두는 가구로서 한 방에 한 바리 즉 두 짝을 갖추어놓는 것이 일반적인 풍습이었다. 농은 흔히 반닫이형식으로 만든 것이 많았다. 농에는 여닫이형식으로 한 것도 있는데 그것을 ‘짝바라지’라고도 하였다.

장과 농은 보통 시렁 또는 받침대 위에 두 짝을 겹쳐서 올려놓기도 하고 가지런히 놓기도 하였다. 두 짝을 가지런히 놓는 경우에는 그 위에 이불이나, 요, 베개 등 침구류들을 잘 개서 보기 좋게 얹어놓았다. 특히 평안도일대에는 장롱 위에 이불치장을 아름답게 잘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풍습이 있었다.
옷장은 여러 개의 층으로 된 것이 많으며 주로 우리나라 중남부일대의 비교적 부유한 층의 주택들에 갖추어놓은 가구로서 2층장, 3층장, 4층장, 의거리장 등이 있었다. 옷장은 외짝으로 되면서 농보다 키가 높은 것이 특징이며 고급한 가구로서 방안갖춤새를 돋보이게 하기 위하여 대체로 안방의 뒷면에 잘 보이는 곳에 놓았다.

큰방(안방)에는 옷을 보관하기 위한 가구뿐아니라 경대나 옷가지를 손질하는데 필요한 물건들도 갖추어놓았다. 경대는 여자들이 머리를 빗을 때나 화장을 할 때에 쓰이는 화장용구로서 그 밑부분의 거울받이함에는 화장용품을 넣어두기 위한 서랍이 있고 그 위에 거울이 세워져 있다. 경대서랍에는 참빗, 얼레빗을 비롯하여 비녀나 댕기 등을 넣어두었다. 경대는 주로 쓰기 편리한 곳에 놓았다.

경대가 없는 집에서는 ‘빗접’이라고 하여 기름을 먹인 종이에 빗이나 빗치개 등을 싸서 농밑에 보관하였다가 머리를 빗을 때에 이용하였다. 바느질함(광주리)은 대체로 둥글게 만든 것으로서 여기에는 옷가지를 손질하는 데 필요한 물건들인 바늘, 실패, 골무, 가위 등이 담겨졌다. 바느질함은 쓰지 않을 때는 농 밑 또는 시렁 위에 올려놓았다. 이밖에 옷가지를 손질할 때 필요한 물건으로서 인두, 인두판, 자 등이 있었는데 이것은 안방시렁에 올려놓기도 하고 농 밑에 보관하기도 하였다.

큰방은 주부의 거처일뿐아니라 안손님들을 접대하는 방이었으므로 부녀자들의 오락도구들이 갖추어져 있었다. 대표적인 여성들의 실내오락으로서는 쌍륙과 윷놀이었으며 쌍륙판과 주사위와 말, 윷놀이판과 윷가락 등이 갖추어졌다. 큰방에는 벽면에 선반과 횃대가 설치되었다. 선반은 대개 판자로 만든 것으로서 가구들이 놓이지 않는 벽면의 윗부분에 만들어졌다. 횃대는 가느다란 나무의 양끝을 노끈으로 매서 벽에 달아맨 것으로서 가구들이 놓이지 않는 곳에 설치하였다. 횃대에는 일상적으로 입는 옷들을 걸쳐놓았는데 두루마기나 치마저고리를 걸쳐놓기에는 매우 편리하였다.

이밖에 부유한 집들에서는 병풍을 갖춘 집도 있었다. 병풍에는 가리개병풍, 머리병풍, 안병풍이 있었다. 가리개병풍과 머리병풍은 키가 낮고 폭이 넓은 2첩짜리로서 잠을 잘 때 문바람을 막기 위하여 머리맡에 치거나 어떤 물건을 가릴 때 이용되었다. 안병풍은 주로 안방을 장식하기 위한 것으로서 화조, 평생도, 십장생을 그린 8~10첩으로 된 것이었다.

이처럼 큰방(안방)에는 주로 주부 또는 여성들이 거처하는 살림방의 특성에 맞게 집세간들이 갖추어졌다.
윗방, 맏윗방(새방) 및 건넌방은 큰방(안방)과 같이 그렇게 이용률이 높지 않은 방들이었다. 이 방들은 일반적으로는 젊은 부부(아들과 며느리)들이 이용하며 또한 결혼전의 자녀들 혹은 홀로 된 노인들도 이용하였다. 이 방들에도 큰방에서와 같은 그러한 용다리, 시렁, 선반, 벽장, 횃대, 장과 농 등이 놓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 방들은 주로 젊은 부부들이 이용하는 것만큼 결혼할 때 장만한 예장함, 장, 농, 궤, 경대 등 새로운 물건들이 놓이게 되며 비교적 깨끗하고 아름답게 꾸려졌다. 또한 이 방들은 공부하는 자녀들이 이용하는 경우에는 대체로 책상과 책장이 놓여 있었다.

맏윗방(새방)에는 늙은 노인이 거처하는 경우도 있었다. 우리나라 서북부일대에는 홀로된 남자노인을 맏윗방에 거처시키는 풍습이 있었다. 이 경우는 대체로 앞채에 사랑방이 없는 집에서 그렇게 하였다. 맏윗방에는 조돌(함실)이라는 난방시설이 특별히 갖추어져 춥지 않게 하였다. 맏윗방에는 노인이 거처하는 것만큼 책상, 문방구, 화로, 흡연용구, 침구류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가구비품들이 갖추어졌다.

사랑방은 대체로 좀 잘 사는 집들에 있었는데 보통 가장인 늙은 노인(남자)이 거처하며 손님을 접대하는 방으로 이용되었다. 또한 이 방은 노인들이 모여서 오락도 하며 이야기도 나누는 장소, 마실방이기도 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조선시대 가장이 사랑방에서 안방에 들어가지 않아 마치 손님과 같다고 하였다. 이것은 16세기에도 사랑방이 가장이 거처하는 방으로 이용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사랑방은 가족의 다른 성원들이 이용하는 것을 삼가하였다. 부녀자들과 아이들은 이 방을 이용하지 못할 뿐아니라 방에 출입하는 것까지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였으며 오직 가장이 부르거나 가장에게 알려야 할 일이 있을 때에만 출입하였다. 이것은 가장을 절대화하고 남자와 여자, 노인과 젊은이를 엄격히 구별한 유교도덕의 영향이었다.

사랑방에는 의거리장과 문갑(문서, 문방구들을 보관하는 궤), 책상, 연상, 책장 등 문방구들과 병풍이 갖추어졌다. 의거리장은 현대 양복장처럼 생긴 것으로서 대체로 두 층으로 되어 있는데 여닫이문을 달았다. 위층은 고가 높은데 여기에는 도포나 두루마기와 같은 겉옷을 구겨지지 않게 걸어두었으며 아래층은 낮은데 여기에는 보통 옷가지를 보관하였다. 병풍은 사랑방에 어울리게 남자들의 기호와 취미를 반영한 그림들을 그린 것과 글씨로 된 것이었다. 이밖에 사랑방에는 화로와 흡연용구 같은 것과 장기와 바둑과 같은 오락도구들도 갖추어졌다. 이것들은 손님을 접대하거나 이웃노인들이 모여 오락을 할 때에 이용되었다. 사랑방에는 흔히 벽장이 설치되는데 여기에는 이 방의 주인인 노인이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침구류들과 돗자리, 갓집과 망건통 같은 것들이 보관되었다.

행랑방(일명 문간방)은 부유한 계층의 주택에만 있는 방이었다. 이 방은 원래부터 가족성원이 이용할 목적에서 만든 방이 아니라 다른 사람 즉 ‘행랑살이꾼’ 또는 ‘머슴살이꾼’을 위하여 만든 방이었다. 행랑방에는 가구 및 시설이 얼마 없었다. 물론 가정을 가진 행랑살이꾼이 방을 이용하는 경우에는 그들의 살림에 필요한 가구 및 시설이 있었으나 독신인 행랑살이꾼 또는 머슴꾼이 이용하는 경우에는 사정이 좀 달랐다. 어느 경우를 막론하고 행랑방은 하나의 실내작업장과 같이 이용되었다. 또한 이 방에는 길손도 유숙시키곤 하였다. 주택에 이러한 방이 없는 경우에는 대체로 윗사랑방을 행랑방으로 대용하기도 하였다.

대청은 개성과 그 이남지방의 주택들에 있은 마루방이다. 대청은 주로 여름철에 샛벽에 있는 문(사첩분합문)을 접어서 천장에 달아매므로 대청을 중심으로 윗방, 건넌방이 한 공간을 이루게 되며 통풍이 잘되었다. 그러나 겨울철에는 원상대로 문들을 닫고 보통 이용하지 않는 계절적인 방에 불과하였다. 특별한 시설이 없는 대청은 여름철에 가족성원들의 취침장소로도 이용되며 경우에 따라 ‘신주’를 두기도 하며 일부 지방에서는 뒤주를 놓거나 맷돌을 비롯한 간단한 살림도구들을 놓아두기도 하였다.

외통유형의 주택들에는 벽장, 다락과 같은 시설이 갖추어져 있는 집들도 적지 않았다. 벽장은 살림방마다 설치하는 특수한 예도 있었으나 대체로는 가구가 집중되는 아랫방에 설치되었다. 아랫방 벽장은 아랫방 구들아랫목 벽체의 중간 윗부분에 설치되었는데 구들바닥으로부터 1~1.5m 정도의 높이에서 천정 밑까지의 사이에 위치하였다. 벽장문은 두 짝 여닫이로 된 것도 있고 간혹 미닫이형식으로 된 것도 있었다. 벽장에는 주로 자질구레한 가구들을 넣어두며 꿀단지와 떡그릇 같은 것도 보관하였다.

다락은 부엌다락을 말하는 것인데 부엌천정 전면에 걸쳐 만든 것도 있고 절반을 다락으로 한 것도 있다. 부엌이 두 칸으로 된 집에서 절반만 다락을 만드는 경우가 많았는데 경기도이남지방에서 흔히 그렇게 하였다. 부엌다락은 아랫방(안방)에서 드나들게 되어 있었다. 대체로 구들아랫목 벽체 뒤쪽 끝에 다락문이 있는데 그것을 열면 문안에 발판이 있고 여기서 몇 개 층의 계단이 있으며 그 위에 넓은 마루가 놓였다. 다락마루와 찬장과의 사이는 허리를 구부리고서야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낮았다. 앞마당쪽 윗부분에 좁고 긴 광창이 있어 다락 안을 희미하게 비쳐 주었다.

다락에는 보통 일상적으로 쓰지 않는 물건들을 보관하였는데 대사 때에 쓰이는 병풍, 제기, 돗자리 등이었다. 특히 결혼식이나 제사 때에는 이 다락방이 긴요하게 쓰이었다. 대사를 위하여 만든 마른 음식물과 술 같은 음료들도 다락에 보관하였다. 손님이 오면 여기서 음식물을 냈는데 지방에 따라 좀 다른 점이 없지 않으나 서해안일대에서는 대체로 대사 때 부엌다락이 합리적으로 이용되었다. 벽장과 다락은 큰방의 연장으로서 생활을 보다 합리적으로 꾸려나갈수 있게 하는 보조적인 시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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