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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지역정보넷 줄다리기
줄다리기는 여러 사람이 두 편으로 나뉘여 긴 밧줄의 양쪽을 갈라 잡고 힘껏 당겨 자기편 쪽으로 상대편을 끌어오는 것을 겨루는 집단놀이다. 줄다리기를 옛 기록들에서는 ‘색전’, ‘갈전’, ‘조리희’라고 하였으며 전라도일대에서는 ‘고싸움놀이’라고도 하였다. 줄다리기의 시원에 대하여 농사와 관련되는 신앙의식인 ‘지모신앙: 땅귀신을 위한 신앙’, ‘용다신앙: 용을 위한 신앙’, ‘점세적년중행사(한해 농사의 흉풍을 점치는 행사)’ 등에서 시작되었다는 말들이 있다. 그러나 줄다리기는 농사와 결부되어 퍼지기 시작한 힘 내기의 한 가지라고 말할 수 있다.

줄다리기는 삼국시대 기록에는 찾아볼 수 없지만 조선시대 기록에 그 역사적 연원이 매우 오래 되었다는 것을 말하여 주는 자료가 있다. 기록에 의하면 “과발하(줄다리기)놀이는 모두 신라, 고려 시대의 옛풍습이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비록 후세의 기록이기는 하나 비교적 정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임하필기』의 필자가 쓴 것처럼 줄다리기는 삼국시대에도 흔히 놀던 놀이이며 다만 당시의 기록에 전하여 오지 않을 뿐이다.

조선시대에는 줄다리기에 대하여 전하는 자료도 많고 백성들 속에서 널리 놀았기 때문에 이 시기에 비로소 줄다리기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다.

줄다리기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밧줄을 준비하여야 하였다. 줄은 줄다리기의 규모에 따라 굵기와 길이를 달리하였다. 줄다리기는 흔히 부락단위로 또는 리, 면 대항으로까지 확대되어 선수와 응원군까지 합하여 수백 수천명에 이르렀다. 줄다리기를 하는 도중에 줄이 끊어지면 끊어진 편이 지는 것으로 되므로 각 편에서는 줄이 끊어지지 않도록 정성을 들여 든든하게 꼬았다.

줄다리기는 처음에 12~13살쯤 되는 소년들이 두편으로 갈라져 작은 줄다리기를 하는것으로부터 시작되었는데 이것을 ‘애기줄당기기’라고 하였다. 두 마을사이에 줄다리기를 처음 시작할 때 줄은 굵지도 않았고 어른들은 참가하지도 않았으며 두 마을의 아이들끼리 하였다. 그러나 동네사람들은 제각기 애기줄당기기의 승부에 관심을 높이었다. 그것은 기본놀이의 서막으로 되는 이 애기줄당기기의 승부가 마지막날에 있게 될 큰 줄다리기의 승부에 정신적으로 영향을 주기 때문이었다.

애기줄당기기가 끝나면 이긴 편 소년들은 자기들의 원줄과 상대편에게서 앗은 줄을 한데 합쳐 어깨에 메고 승전가를 부르며 자기 동네로 돌아와 마을을 빙빙 돌아 다녔다. 그러면 동네 어른들은 아이들의 승리를 기뻐하면서 짚이나 필요한 자재들을 더 많이 마련해 주었다. 애기줄당기기가 절정에 이른 때인 정월 13일 또는 14일경에 큰 줄다리기를 시작하였다. 큰줄당기기는 두 동네사이에서만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고을안의 모든 동네들을 포괄하여 두 편으로 나누어 진행되기도 하였다.

줄을 드리는 방법은 줄을 높은 나뭇가지에 걸어놓고 짚을 세갈래로 단단히 비벼서 삼합으로 꼰후 다시 그것을 세 개 합쳐서 보다 굵은 삼합줄을 드리는데 이러한 공정을 여러차례 반복하였다. 이렇게 드리면 매개 줄들은 마치 쇠줄과 같이 딴딴하고 대단히 굵게 되었다. 직경이 20~30cm쯤 되는 줄들이 만들어지면 다시 그것들을 3~4개 합쳐서 그 위를 딴딴한 짚줄이나 칡줄로 여러겹 묶었다. 이렇게 품을 넣어 완성한 원줄의 굵기는 대체로 직경 50~60cm, 길이는 300~400cm나 되었다.

경기는 두 마을 또는 두 고을의 경계점으로 되는 큰풀밭 위나 마당에서 하였다. 큰줄당기기는 애기줄당기기때와 달리 대낮에 하였다. 그것은 경기에 직접 참가하는 양편의 인원만 하여도 수백명에 달하며 또 직접 참가하지 않더라도 지역 안의 모든 남녀노소가 거의 빠짐없이 경기장소에 나와서 열렬한 응원을 하였다. 이웃 고을에서도 수많은 구경꾼이 모여왔다. 그러므로 줄다리기를 밤에는 하지 않고 대낮에만 하였다.

경기는 총심판의 신호에 따라 시작하였다. 순간 술렁거리던 잡소리들은 일시에 뚝 그치고 오직 수천군중의 목소리를 합쳐 ‘우엿싸! 우엿싸!’ 또는 ‘어이싸! 어이싸!’하는 소리만이 우렁차게 울린다. 승부가 결정되면 이긴편이 자기 줄과 함께 연결된 진편의 줄을 끌어간다. 이긴 편은 줄을 메고 농악을 울리면서 마을을 한바퀴 돌았다. 이것이 가장 일반적으로 하던 줄다리기였다. 줄다리기를 통하여 마을사람들은 단합된 힘을 과시하였을 뿐 아니라 경기에서의 승부를 농사의 흉풍과 결부하여 설명하였다. 즉 줄다리기에서 이긴 편에는 풍년이 들고 진 편에는 흉년이 든다고 해석하였다.

이처럼 줄다리기를 한해 농사의 결과를 결정하거나 풍년이 들고 비가 오기를 바라면서 노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해석들은 모두 미신적인 것이지만 그것은 줄다리기에서 사람들의 용기와 단결된 힘을 최대한 발양시키기 위하여 홍미를 돋우어 주려고 덧붙인 해석에 불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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